
학교에서 드론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아이들은 대부분 조종기를 잡는 역할을 가장 좋아합니다.
친구가 조종하고 있으면 자기 차례가 언제 오는지 기다리는 모습도 자주 보이고요.
이날도 기본 비행을 마친 뒤 두 명씩 짝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조건을 하나 넣어봤어요.
한 학생은 드론을 조종하고 다른 학생은 옆에서 다음 이동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을 맡겼습니다.
단, 안내하는 친구가 조종기에 손을 대거나 대신 움직여주는 것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말로만 서로 맞춰보는 활동이 시작됐습니다.
■ "오른쪽! 아니, 내 오른쪽 말고!"
첫 번째 팀부터 예상했던 장면이 바로 나왔습니다 ㅎㅎ
안내하던 학생이 "오른쪽으로 가!"라고 말하자 조종하던 친구가 방향을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안내한 학생이 갑자기 "아니! 그쪽 말고!"라고 외쳤어요.
두 아이가 바라보는 방향이 달라서 같은 오른쪽이라는 말도 서로 다르게 받아들인 겁니다.
일단 드론을 안전하게 멈추고 두 학생에게 무엇이 헷갈렸는지 물어봤습니다.
아이들도 금방 이유를 알아차렸습니다.
평소에는 너무 당연하게 사용하던 방향 하나가 상대에게는 전혀 다르게 들릴 수 있었던 거죠.
★ "그럼 링을 기준으로 말하면 되잖아"
제가 해결방법을 바로 알려주지는 않았습니다.
두 아이에게 어떻게 말하면 덜 헷갈릴지 한번 정해보라고 했어요.
잠시 이야기하더니 한 학생이 링과 콘을 기준으로 설명해보자고 했습니다.
"오른쪽"이라고만 하는 대신 "빨간 링 쪽으로 조금", "노란 콘 앞에서 멈춰"처럼 눈에 보이는 기준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조종하던 학생도 이해하지 못하면 바로 움직이지 않고 다시 물었습니다.
두 번째 비행에서는 첫 번째보다 말수가 오히려 줄었는데 움직임은 훨씬 차분해졌습니다.
많이 말하는 것보다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는 것이 중요했던 겁니다.
📌 안내 역할에도 안전 기준은 먼저 정했습니다
이런 짝 활동을 할 때 가장 먼저 정하는 것은 역할의 범위입니다.
안내하는 학생이 흥분해서 비행구역 안으로 들어가거나 조종기를 갑자기 잡지 않도록 미리 설명합니다.
기체의 안전한 운용과 비행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은 강사가 계속 확인해야 하고요.
학생에게 맡기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해진 안전범위 안에서 다음 목표물을 관찰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입니다.
또 안내가 헷갈릴 때는 무리해서 움직이지 않고 기체를 안정시킨 뒤 다시 확인하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이 함께하는 활동일수록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야 오히려 수업이 편해지더라고요.
■ 역할을 바꾸자 말하는 방법도 달라졌습니다
한 번 비행을 마친 뒤 두 학생의 역할을 서로 바꿨습니다.
아까 계속 "빨리 가", "조금 더"라고 이야기하던 학생이 이번에는 직접 조종기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재미있는 반응이 나왔어요.
친구가 똑같이 "조금 더 가"라고 말하자 바로 "얼마나?"라고 물었습니다 ㅋㅋ
자기가 안내할 때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말이 조종하는 입장에서는 애매하다는 걸 직접 느낀 겁니다.
다음 차례에 다시 안내 역할을 맡았을 때는 "링 가까이 가서 멈춰"처럼 표현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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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을 많이 하는 학생만 안내를 잘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평소 발표를 잘하는 학생들이 안내 역할에서도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활동은 조금 달랐어요.
말수가 적은 한 학생이 친구의 비행을 한참 보더니 꼭 필요한 순간에만 짧게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멈춰."
"빨간 링 확인."
"통과하면 왼쪽 콘."
친구도 그 말을 듣고 하나씩 움직였습니다.
설명을 길게 하는 능력보다 상대가 지금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번에는 조종하는 아이가 먼저 질문했습니다
활동이 익숙해지자 조종하는 학생들의 태도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안내가 들리면 바로 스틱부터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몇 번 방향이 엇갈리고 나니 이해되지 않는 말에는 먼저 질문하기 시작했어요.
"어느 링?"
"여기서 바로 돌아?"
"지금 멈추라는 거야?"
확인하고 움직이니 비행 속도는 조금 느려졌지만 실수는 오히려 줄었습니다.
서로 이야기한다는 건 한 사람이 계속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도 필요한 정보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걸 아이들이 몸으로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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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도전에서는 둘이 먼저 약속을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코스는 제가 일부러 방향 전환을 조금 더 넣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바로 출발하지 않더라고요.
한 팀은 조종기를 내려놓은 상태에서 먼저 코스를 보면서 어떤 말을 사용할지 정했습니다.
링의 색깔로 위치를 부르고 멈춰야 할 곳에서는 "정지"라고 말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잘못 들었을 때는 억지로 움직이지 않고 다시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활동에서는 비행하면서 계속 말을 맞춰갔는데 이제는 출발하기 전에 서로의 기준부터 맞추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굳이 추가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아이들에게 조종과 안내 중 어떤 역할이 더 어려웠는지 물었습니다.
당연히 조종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안내가 더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학생도 꽤 있었습니다.
자기는 방향을 알고 있는데 그걸 친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고 했어요.
한 학생은 "내가 아는 거랑 설명하는 건 다르네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도 이날 활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드론수업에서는 눈앞에 있는 기체를 얼마나 잘 움직이는지가 가장 먼저 보입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여러 아이가 함께 배우는 시간에는 혼자 조종기를 잘 다루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 장면이 꽤 많습니다.
내가 본 것을 상대에게 알려주고 상대의 말을 정확하게 듣고 이해되지 않으면 다시 확인하는 과정도 필요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활동을 거창하게 의사소통 교육이라고 포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냥 친구와 드론 하나를 함께 목적지까지 보내려고 애쓰고 있었을 뿐이에요.
그 과정에서 말이 애매하면 드론도 엉뚱한 곳으로 움직였고 기준을 맞추면 비행도 달라졌습니다.
직접 결과가 눈앞에 나타나니 긴 설명보다 훨씬 빠르게 이해하더라고요.
저 역시 예전에는 자기 차례가 아닌 학생에게 조용히 기다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즘은 기다리는 학생도 수업 안에서 어떤 역할을 가질 수 있을지 조금 더 고민합니다.
드론 한 대를 두 명이 함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활동이 만들어질 수 있었으니까요.
다음 수업에서도 짝 활동을 진행한다면 저는 출발 전에 한마디만 해볼 생각입니다.
"친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길을 알려줘볼까?"
어쩌면 드론을 원하는 곳으로 보내는 것보다 먼저 맞춰야 하는 것은 조종기의 방향이 아니라 두 아이가 서로 이해하는 방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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